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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스

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23-04-27 16:25:23

독재자의 나라, 아이티를 배경으로 그려진 희비극

코미디언스



[책 소개]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우리는 형편없는 코미디언들입니다.
나쁜 인간이 아니라.”

영미문학의 거장 그레이엄 그린이
독재자의 나라, 아이티를 배경으로 그려낸 희비극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냉전으로 얼어붙은 시절의 아이티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아이티의 대통령은 프랑수아 뒤발리에(일명 ‘파파 독’)로, 수많은 국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인권 탄압으로 악명을 떨친 독재자였다. 오늘날 아이티를 최빈국으로 만든 원흉이라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독재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비밀경찰 조직 ‘통통 마쿠트’가 있다. 이들은 험상궂은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지프차를 몰고 다니며, 수시로 국민들을 수색 검문하는 폭력배들이다. 

독재자의 치하 아래 반군이 들끓는다. 아이티는 점점 험악한 나라가 되어가고, 관람객은 발길을 끊었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아이티의 지식인들마저 아이티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황량해진 아이티에서 다 쓰러져가는 호텔을 운영하는 영국인, 브라운은 이곳에 남아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와 함께 메데이아호를 타고 온 이들─존스, 스미스 등─은 아이티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나를 위해 우연히 선택된, 무섭고 황폐한 이 땅에 더 큰 유대감이 느껴졌다.”_본문에서

주인공 브라운은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호텔 트리아농을 운영하고 있다. 파파 독의 독재가 시작되고부터 관광객이 줄어들자 브라운의 호텔 사업은 망조에 접어들었다. 브라운은 호텔을 팔기로 결심하고 호텔을 사줄 구매자를 찾으러 미국으로 떠났지만 허탕을 치고 다시 아이티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버지는 얼굴을 본 기억도 없고, 어머니는 살 길을 찾아 일찌감치 자신을 버리고 떠난 탓에 홀로 먹고사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브라운은 매사에 냉소적이다. 그런 그의 눈에는 모든 이가 허영과 가식으로 둘러싸인 코미디언처럼 보인다. ‘모든 이’에는 브라운 자신도 포함된다. 메데이아호에 동승한 스미스 씨는 채식주의자 대표로 미국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정치인이며, 존스는 세계대전 때 일본군을 상대로 큰 전투를 벌여 전쟁 영웅이 된 소령이다. 이 셋은 기묘한 한 쌍을 이루며 아이티에 당도한다.

브라운은 한 달 만에 호텔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기는 건 성대한 저녁 식사도, 충실한 집사의 마중도, 정부情婦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우글거리는 손님들도 아니다. 호텔 수영장 한 구석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체 한 구였다. 시체의 정체는 닥터 필리포,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이었다. 사회복지부 장관은 독재자의 미움을 사 비밀경찰들에게 쫓기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때, 호텔 진입로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시신을 발견하고 당혹감에 휩싸인 브라운이 서둘러 호텔 입구로 가자, 스미스 부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메데이아호에서 만난 ‘친구’ 브라운의 호텔에 머물기 위해 친히 찾아온 것이었다. 브라운은 그들이 시신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시신을 언제까지고 수영장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 대통령과 관련된 일에 휘말리면 누구든 안전할 수 없는 아이티에서 브라운은 어쩔 수 없이 갑작스런 죽음과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인생은 내가 각오하고 있던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었으며…… 
우리 모두 어느 권위 있는 짓궂은 익살꾼에게 놀아나 
희극의 극단으로 내몰리는 느낌이었다.”

울고 웃는 인간들
그 이면에 숨은 진짜 민낯

그레이엄 그린은 1954년에 처음으로 아이티를 여행했다. 그리고 10여 년 후 『코미디언스』가 아이티의 대통령 ‘파파 독’의 분노를 사기 전까지 수없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린은 아이티에서 벌어지는 학대 행위를 개탄하면서, 아이티에 관한 글을 신문에 기고할 뿐만 아니라 보도문까지 발표했다. 분노한 파파 독은 그린을 비난하는 팸플릿 「그레이엄 그린: 드디어 가면이 벗겨지다」를 발행하기까지 한다.

찰리 채플린의 말마따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린은 자신이 익히 경험한 아이티의 비극을 저널리스트로서 충실히 보도했지만, 소설가로서는 그곳을 멀찍이 관조하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기이한 희극을 창조해 냈다. 텅 빈 호텔들, 과장된 소문들, 검문소를 지키는 폭력배들, 모든 게 실패하다 못해 반란마저 실패로 돌아간 상황, 병정놀이하듯 너무도 쉽게 죽고 죽이는 무의미한 싸움들……. 

“우리는 비극이 아닌 희극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_본문에서

“『코미디언스』는 불안정의 소설이다. 아이티에도, 아이티인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먹을 것도 없다. 정부는 기생충처럼 국민을 괴롭힌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 흠, 섹스(그건 가능하다). 신앙(부두교는 나름의 흥취를 갖고 있으며, 가톨릭교의 하느님은 천국에서 구원을 약속한다). 사랑(이곳에 사랑은 별로 없다). 코미디(이건 꽤 많다. 사실, 꼭 필요하다). 비극은 희극에 꽤 가깝다고, 그린은 쓴 바 있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갈 때–이 소설에서도 다른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웃음만은 항상 존재한다.”_해설에서

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은 각자 위태롭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나서 눈물을 벅벅 닦고 바보같이 웃어보이는 광대처럼. 소설 속 사건들은 현실감이 떨어질지 몰라도, 섬뜩한 코미디가 펼쳐지는 그 장소에 대한 그린의 집착 어린 사랑은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린이 『코미디언스』를 집필함으로써 비로소 아이티는 소설을, 얼굴을 갖게 되었다.

비극을 견디기 위해 코미디언이 된 자들을 우리는 비웃을 수 있을까. 위기에 직면할 용기가 없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브라운, 존스, 스미스는 그 진부한 이름들만큼이나 시시한 인간일지 모르나, 그들이 소설 속에서 추구하는 이상과 삶의 태도는 결코 시시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한 챕터를 연기하고 있는 코미디언일지도 모른다.


[추천의 글]
강력하고 신선한 작품. <코미디언스>는 훌륭하고 중요한 소설이며,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우리는 탁월한 활력과 기술, 우리를 기쁘게 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펼쳐지는 그린랜드(GreeneLand)로 짜릿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 뉴욕 타임즈 리뷰 <코미디언스> 리뷰 중

악에 맞서는 용기의 필요성을 말하는 소설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작가 수상 이력]
1968년 셰익스피어 상
1981년 예루살렘 문학상


[출판사 서평]
그레이엄 그린은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였다. 조금 냉정한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훌륭한 저널리스트는 아니었던 듯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보도 기사에는 어딘지 저널리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적 태도와 주관적 판단이 (약간의 과장과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특종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생생한 이야기에 더 이끌렸다. 아이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독재자의 공포 정치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제삼자의 위치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코미디언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아이티 내부에 속한 자들로, 파파 독이 집권하기 전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절과 독재와 검열이 시작된 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시절 모두를 담담히 살아내고 있다. 생존은 치열하다. 사랑은 찌질하다. 죽음은 가소롭다. 여기에 제삼자는 없다. 1954년부터 10년간 아이티를 오가며 그곳의 급변하는 정치, 경제, 사회를 두 눈으로 목격한 내부자나 다름없던 그린은, 아이티의 민낯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써 저널리즘이 아닌 소설을 택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서구의 서슬 퍼런 알력 다툼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아이티에게 진정으로 독특한 얼굴을 만들어주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을 편집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차례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브라운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웃었고, 두 번 읽었을 땐 존스의 차마 웃을 수 없는 코미디 연기가 서글퍼 마음이 아팠고, 세 번 읽었을 땐 마치 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뿌리를 잃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떠돌이가 된 것만 같아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코미디언스』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읽는 이로 하여금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의 정수.


[줄거리 요약]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출발해 카리브해 중앙에 위치한 아이티로 향하는 선박, ‘메데이아호’
주인공 ‘브라운’은 이 배를 타고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는 아이티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오랫동안 호텔 트리아농을 운영하고 있는 백인 남성이다. 사실상 호텔은 그의 전 재산이다. 한때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으며 돈을 많이 벌었지만, 지금은 아이티의 얼어붙은 정치 상황이 덮쳐 관광객도 뜸하고, 호텔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는 매사에 무심하고 무감각해 보인다. 주변의 변화에 냉담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그다지 동요하는 것 같지가 않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유년시절 어머니의 애정도 그리 듬뿍 받지 못한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기와 거짓말로 먹고살았고, 그러던 중 어머니의 호텔을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사실 이번에 그가 미국에 갔던 이유는 아이티의 호텔을 사줄 매입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위태로운 나라에 있는 망해가는 호텔을 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결국 빈손으로 다시 아이티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 배에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동승객들이 있었다.
먼저 스미스 부부. 스미스 씨는 1948년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정치인으로, 선거에서 졌지만 여전히 정계에서 명망 있고 진중한 사람으로 통한다. 그와 스미스 부인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다. 이 둘은 아이티에 채식주의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이 배에 올랐다. 스미스 씨는 특별히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 앞으로 쓰인 소개장을 받아온 터였다. 스미스 부인에게선 스미스 씨에게서보다도 더 상류층의 우아함과 품위가 느껴진다. 이 둘은 정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며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백인들이다. 승객들이 다 같이 모여 스테이크가 포함된 만찬을 즐길 때에도, 꿋꿋이 채식 식품을 나눠먹는다. 항해 내내 다정하고 금슬 좋은 노부부처럼 보인다.

그리고 존스 소령. 존스와 주인공 브라운의 첫 만남은 다소 민망했다. 존스가 브라운의 방이 탐나 승무원에게 브라운 몰래 방을 맞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찰나를 브라운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존스는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민망함을 모면했지만, 어딘지 허풍선이처럼 보이는 존스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브라운은 영 마뜩찮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특히 버마에서 있었던 일본과의 전투를 자랑스레 떠벌린다. 그런데 항해가 끝나갈 무렵, 브라운은 선장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존스 소령이 필라델피아의 경찰로부터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박 사무장. 그는 술을 좋아하는 지저분하고 대책 없이 쾌활한 남자이다.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승객들을 초대해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모든 걸 과장되게 말하는 버릇도 있다. 특히 아이티에 내리면 시내 깊숙이는 들어가지 말라며, 밤중에 총소리가 자주 들린다는 말로 승객들을 겁주기도 한다. 그는 항해가 끝나기 전 선상 음악회를 주최한다. 존스 소령에게서 빌린 콘돔을 풍선처럼 불어 음악회를 장식하는 그를 브라운은 한심하게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페르난데스 씨. 그는 아이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인 산토도밍고로 향하는 중이다. 높다란 흰 옷깃에 빳빳한 소맷부리, 금테 안경으로 말쑥한 차림을 한 흑인 남성이다. 그는 다른 승객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고, 무슨 질문에든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그의 대답만으로는 그가 속으로 진정 긍정하고 있는지 부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선상 음악회에서 한 승객이 낭송하는 전쟁 시를 듣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어느덧 공포와 좌절의 나라로 돌아온 브라운은 야심한 시각, 자신의 호텔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인다. 바로 호텔 수영장 한 구석에서, 무릎을 턱까지 끌어당긴 채 몸을 말고 누워 있는 시체였다. 시체는 깔끔한 회색 정장을 차려 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닥터 필리포,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호텔 정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메데이아호에서 만난 스미스 부부였다. 브라운은 당황한다. 호텔 수영장에 시체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그래도 망해가는 호텔은 확인사살을 당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공포 정치로 얼어붙은 아이티에서 정치인의 죽음과 잘못 엮이면, 아무리 그가 결백하다고 해도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대체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이 왜 내 호텔에서 죽어 있는가? 살해당한 것인가, 아니면 자살인가? 그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우선 브라운은 스미스 부부를 가장 좋은 스위트룸으로 안내한 뒤, 한숨을 돌린다.

그때, 스위트룸 창밖으로 몸을 내민 스미스 부부가 수영장 구석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다.

(일부 발췌)
“브라운 씨, 수영장에서 누가 자고 있소.”
브라운은 대답한다. “아마 거지일 겁니다.”
스미스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여보?”
“저 밑에.”   
“가여워라. 저 사람한테 돈을 좀 줄까 봐.”
“그러지 마, 여보. 괜히 저 불쌍한 친구를 깨우기만 할 거야.”   
“왜 하필 저런 데를 골랐을까 몰라.” 
“시원하니까 그랬겠지.” 

가까스로 그 밤을 무사히 보낸 브라운은 살 길을 찾기 시작한다.


[저자 소개]
지은이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1904-1991)
격변의 20세기 거의 대부분을 살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로 시대와 인간을 기록했던 영국의 문인 그레이엄 그린은 세계 문학사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때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세계대전 중에 MI6(비밀정보부)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당대에 폭발적인 대중의 인기와 문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린 희귀한 작가이다. 그린은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학창 시절 괴롭힘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의 한 방편으로 권유받은 글쓰기는 그린에게 있어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구원의 방식이자 실존의 문제가 된다. 〈더 타임스〉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던 1929년, 그린은 첫 장편소설 『내부의 나』로 호평받자 신문사를 사직하고 창작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어 출간한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좌절에 빠졌다가 대중소설 『스탐불 특급열차』를 발표하면서 다시 명성을 얻는다. 이후 그린은 ‘스릴러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순수문학과 ‘고도로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오락물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옮긴이 이영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쌤통의 심리학』,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라이프 프로젝트』, 『행복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도둑맞은 인생』 등 다수가 있다.


[목차]
1부
2부
3부
그레이엄 그린의 서한
해설 및 비평


[책 속으로]
“채식주의는 그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오, 브라운 씨. 여러 지점에서 우리의 삶과 닿아 있소. 우리 몸에서 산성을 없애면, 격한 감정도 없앨 수 있을 거요.”
“그럼 세상이 멈추겠죠.”
“난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소”라며 그가 나를 점잖게 책망하자, 나는 기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냉소주의는 어느 모노프리 매장에서든 살 수 있는 싸구려다. 모든 조악한 상품에 내장되어 있으니까.
<28페이지>

그녀의 차와 나란히 서게 됐을 때 나는 차창 밖으로 매정하게 소리쳤다. 
“잘 가, 프라우 피네다.” 
그때 운전대 위로 몸을 구부린 채 울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던진 후에야 나는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133쪽>

대사가 말했다. “어이, 기운 내요, 우리 모두 코미디언이 됩시다. 내 시가 한 대 피워요. 바에서 실컷 마시고요. 내 스카치 맛이 꽤 좋답니다. 어쩌면 파파 독마저 코미디언일지도 모르죠.”
“오, 아닙니다.” 필리포가 말했다. “그놈은 진짜예요. 공포는 항상 진짜죠.”
<195페이지>

“어쩌면 우린 더 이상 코미디언이 되지 않아도 괜찮을지 몰라.”
“당신은 코미디언이 아니라며.”
“내 말이 좀 심했지? 하지만 당신들 대화가 좀 짜증이 나야 말이지. 우리 전부 자기연민에 빠진 쓸모없는 싸구려 인간처럼 보이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즐길 필요까진 없어. 적어도 난 행동해, 안 그래? 그게 설령 나쁜 일일지라도 말이야. 난 당신을 원하지 않는 척하지 않았어. 처음 만난 그날 저녁 당신을 사랑하는 척하지 않았어.”
“나를 사랑해?”
“난 앙헬을 사랑해.”
〈197페이지〉

‘어쩌면 성생활은 큰 시험일지도 몰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관용과 우리가 배신했던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다면, 우리 안의 선과 악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질투, 불신, 잔인함, 복수, 비난…… 여기에 휘말리면 우리는 실패하고 말 거야. 설령 우리가 사형 집행자가 아니라 피해자라 해도, 그 실패에 잘못이 있어. 미덕을 변명으로 내세울 순 없어.’
<204페이지>

“탱탱, 그 사람이 못되게 굴진 않았지?”
“아, 네. 마음에 들었어요. 아주 많이.”
“뭐가 그렇게 좋았지?”
“날 웃게 해줬거든요.” 이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번 나를 심란하게 만들 말이었다. 나는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이런저런 요령을 터득했지만, 남을 웃기는 재주는 익히지 못했다.
<220페이지>

최초의 빛깔들, 진녹색에 이어 진홍색이 정원을 물들였고–덧없음이야말로 나의 피부색이었다–나의 뿌리는 내게 집이나 안정적인 사랑을 찾아줄 만큼 깊숙이 뻗어 내려가지 않았다.
<324페이지>

“당신이 인생에서 바라는 건 뭡니까, 브라운? 당신 어머니가 했을 법한 답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뭐죠?”
“그분은 답을 모르는 나를 비웃으셨을 겁니다. 그 답은 바로 재미랍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재미’있었죠. 심지어 죽음까지.”
<340페이지>

그리고 나보다 두 걸음 앞에 서 있는 마르타를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의 어중간한 애정이 왜 그리 중요했을까? 이젠 그 관계도 포르토프랭스, 어둠과 무시무시한 통금, 먹통 전화, 검은 안경을 쓴 통통 마쿠트, 폭력과 불의와 고문의 세계에만 속한 일처럼 느껴졌다. 몇몇 와인이 그렇듯, 우리의 사랑은 성숙하지도, 힘든 시간을 버텨내지도 못했다.
<41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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