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에 깃든 선한 마음을 향한 스물다섯 번의 노크
인생 박물관
[책 소개]
『회색 인간』 김동식의 열네 번째 개인 소설집이자 첫 해피 엔딩 모음집
2017년 데뷔 이후 작가는 1천여 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주시하며 선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인생 박물관』은 이례적으로 그러한 시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이 책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한 글들”이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인간 내면에 깃든 선한 마음에 귀 기울이고자 한 노력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마냥 미소만 지어지는 서사로 가득한가 하면, 아니다. 주인공들은 탐욕스럽거나 불행하고 절망스러우며 슬픈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자살을 하러 간다(「자살하러 가는 길에」), 아이 분윳값도 없어서 동창회에 10만 원을 빌리러 가고(「벌금 만 원」), 병든 엄마를 홀로 긴 세월 간병하고 있기도 하다(「내향적인 홍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상황에서 과연 인류애를 느낄 만한 결말이 어떻게 나오는가가 이 책을 읽을 때 얻게 되는 재미와 공감의 지점이다.
이미 발표한 1천여 편의 소설 중 작가가 특별히 사랑한 여섯 편과 새롭게 선보이는 열아홉 편을 묶어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안도감을 전하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한 글들이다.”
인간 내면에 깃든 선한 마음을 향한 스물다섯 번의 노크
그럼에도 기꺼이 희망으로 편향되는 이야기들의 발길
“사람이 제일 무섭다뇨?”
- ‘공포’에서 ‘희망’으로 시선을 돌린 김동식의 첫 해피엔딩 단편집
널리 알려져 있듯, 작가가 처음 소설을 공개한 곳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이었다. 게시판명에 걸맞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주목한 점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자연히 1천여 편의 소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는 살인, 치정, 배신, 납치, 사기, 질투, 탐욕 등 인간의 그늘진 본성이었고, 결말 역시 그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인생 박물관』은 이례적이다. 책에 담긴 스물다섯 편의 이야기 결말이 모두 그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하여 쓴 글들”이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인간의 내면에 깃든 선한 마음에 귀 기울이고자 한 노력의 결실로 출간되었다. 작가가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디는 계기가 돼준 ‘공포’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 ‘희망’으로 시선을 돌린 첫 해피엔딩 소설 모음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뇨?”라고 스물다섯 번 반문하는 소설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인간을 좋아한다”
-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희망은 어떻게 피어나는가
그렇다고 마냥 미소만 지어지는 서사만 가득한가 하면, 아니다. 세상사의 천태만상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복잡한 인간 본성을 그려내는 소설가인 만큼 여전히 주인공들은 탐욕스럽고, 불행하고, 절망스러우며, 슬픈 상황에 직면해 있다.
주인공은 삶의 동기를 잃고 자살하러 간다(자살하러 가는 길에, 천사의 변장), 아이 분윳값도 없어서 동창회에 10만 원을 빌리러 가고(벌금 만 원), 복수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한편(복수심의 크기, 인간은 언제 신을 믿는가). 온라인에 글을 써 위로를 구하는 이도 있다(위로가 힘든 사람에게).
그뿐 아니다. 오랫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청년(커튼 너머의 세상), 저 혼자 물고기를 낚고 싶어서 혈안이 된 낚시꾼(태어나 첫 낚시), 병든 엄마를 홀로 간병하는 소녀가장(내향적인 홍이). 부모의 존재 가치를 몰라 방황하는 이들(인생 최고의 업적,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결정된 편지)도 있다. 또한 결혼식 전날 연락을 두절했던 친구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신부(친구), 자살한 딸을 만나기 위해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하는 노인(할머니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위기 처한 노인(우주의 법정), 당장 이번 달 월세도 없는 중년(누가 내 머리에 돈 쌌어) 등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이가 단 하나도 없다.
이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상황을 그린 이야기에서 어떻게 인류애를 느낄 만한 결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으며 재미와 공감을 얻는 지점이다. 막연한 긍정론이 아닌 ‘현실은 이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거친 희망이기에 독자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서사로 다가가고, 작가의 바람처럼 독자도 “난 인간을 좋아한다”고 말해볼 수 있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이야기 모음집
삶이 어려워지면 대중은 영웅을 원하게 마련이다. 능력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악당을 물리쳐주길 원한다. 애석하게도 이 소설집엔 그러한 영웅이 전혀 없다. 대신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친구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방식으로 금전적 도움을 주는 동창,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청년에게 초코파이와 우산을 건네는 아주머니들, 한 아버지의 아들에게 들려줄 명언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선술집의 남자들, 초과 근무를 해서라도 곤경에 처한 노인을 구하는 이들,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출산을 선택한 아내의 존재 가치를 자녀에게 분명히 하는 남편, 친절한 손님에게 상품권 당첨 기회를 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모두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다.
어느 시대나 살기 어려운 시절이라고 했으나 팬데믹과 전쟁으로 전 세계의 모든 평범한 사람이 더욱 크고 다양한 어려움과 곤경에 처했다. 그 어려움과 곤경은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소설집은 이러한 때에도 결국 사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건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깃든 선한 마음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들 덕분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말하는 이 해피 엔딩 소설집을 통해 많은 독자가 위로를 얻고, 삶에 대한 안도감을 얻기를 바란다.
[차례]
작은 눈사람
벌금 만 원
자살하러 가는 길에
친구
인생의 조언
내향적인 홍이
인생 박물관
생애 첫 낚시
우주의 법정
친절한 그녀의 운수 좋은 날
도굴꾼의 아들
할머니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좋은 일을 하면 다 돌아온다
찰나를 사는 남자
멍청한 악마
결정된 편지
복수심의 크기
인생 최고의 업적
인간은 신을 언제 믿는가
커튼 너머의 세상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천사의 변장
누가 내 머리에 돈 쌌어
위로가 힘든 사람에게
그의 일대기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지은이 김동식
2017년 말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동시 출간하며 데뷔했다. 첫 소설집 『회색 인간』이 판매 20만 부를 돌파하며 한국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양심 고백』,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 『살인자의 정석』,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문어』, 『밸런스 게임』까지 총 10권의 ‘김동식 소설집’을 펴냈다. 현재까지 1천 편이 넘는 소설을 창작했으며, SDF 프로젝트 소설집 『성공한 인생』, 작법서 『초단편 소설 쓰기』, 연작소설 『궤변 말하기 대회』, 오디오드라마와 동시 제작된 단편집 『청부살인 협동조합』 등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즐거워하는 동창들의 모습은 남자에게 지옥이다. 불과 몇 초가 그에게는 몇 년이다. 남자의 얼굴은 반장을 향한 증오와 배신감을 숨기지 못한다. 이윽고, 벌금 그릇을 든 누군가의 손이 남자의 앞으로 내밀어졌을 때, 남자는 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를 꽉 움켜쥔다. 짧은 순간 그는 갈등한다. 만 원 안 내고 도망칠까 가장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깟 창피함, 그깟 자존심보다 우유 한 팩, 쌀 한 줌이 중요하다. 동창들이 수군거리든 말든,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되든 말든. (「벌금 만 원」)
집에 돌아와 엄마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평소 엄마의 꿈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의 꿈은 그냥 엄마인 줄 알았다. 한데, 17년 전에는 엄마도 나처럼 꿈이 있었다. 그 꿈을
펼칠 기회도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꿈을 포기했을까? 엄마는 정말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까? 만약 엄마가,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아침에 눈을 뜬 청년은 오늘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전혀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수천만 원의 빚은 절망적이었고, 벌써 며칠째 집에만 처박혀 있는 한심한 처지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까? 결정은 쉬웠다. 꾀죄죄한 그의 몰골을 물에 던져버리면 그만이니까. 바다? 저수지? 역시, 바다. 청년은 바다로 가기 위한 돈을 긁어모으려 방 안을 뒤졌다. 은행 행사에서 받았던 돼지 저금통을 가른다면 몇 푼은 나오겠지. (「천사의 변장」)
‘너 기억나냐? 나 수학여행 못 가게 생겼을 때 네가 3만 원 내줬던 거. 그 시절 너한테 그 3만 원이 어떤 돈이었는지 몰라도, 그 당시 나한테 3만 원은 우리 온 가족이 매달려도 못 만들던 돈이었다. 내가 진짜 고마웠는데, 자존심 때문에 고맙단 말을 못 했던 게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더라. 아, 이럴 게 아니다. 내가 그 돈 갚아야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라!’ (「누가 내 머리에 돈 쌌어」)
힘내란 말은 여러모로 최악입니다. ‘안녕하세요’란 말이 정말 안녕한지 궁금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원래 인사말이라서 하는 말인 것처럼, 힘내란 말도 원래 힘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서 하는 거니까 말입니다. (「위로가 힘든 사람에게」)
[작가의 말]
과거, 내가 인간을 탐구한 이유는 공포 게시판에 어울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그 말만을 철썩같이 믿고,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어떻게 드러낼지를 궁리하며 애썼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이 책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하여 쓴 글들이다. 실제로 난 인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좋다. 좋아하는 책을 낼 수 있어 기쁘다. 조금 욕심을 내보자면, 독자 분들도 이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읽는 동안 독자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를, 내가 글을 쓰면서 느낀 감정과 같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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