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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일지

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22-08-26 14:37:07

노동의 현장에서 피어난 삶의 정수, 이용훈 첫 시집

근무일지 



[도서 소개]

“아니 왜 다짜고짜 수고하라고만 하십니까들”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밀려드는 치열한 세상살이

노동의 현장에서 피어난 삶의 정수, 이용훈 첫 시집

 

생생한 감각과 날카롭고 위트 있는 시어의 사용으로 주목받는 신예 이용훈 시인의 첫 시집 『근무일지』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현장의 실상과 노동하는 삶의 “뼈아픈 아름다움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그리면서 “삶과 시가 하나인 세계”(이영주, 추천사)를 펼쳐 보인다. 일용직 노동자, 외장 목수, 모텔 청소부, 수화물 터미널 막일꾼, 정신병원 폐쇄병동 보호사, 환경미화원, 택배 기사 등 온갖 일터를 전전해온 시인의 구체적 경험에서 길어 올린 삶의 처절한 기록이다. 삶과 노동의 서사 속에 특유의 유머와 언어유희를 곁들여가며 직설적인 어법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시편들이 기존의 노동시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작법을 보여준다. 등단작 「대림성 나마스테」를 포함하여 67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실었다.

 

건설하는 동시에 해체되는, 노동자 공통의 감각

시집에 담긴 삶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용훈 시인은 영락없는 ‘노동자’다. 시인은 ‘쓰레기 인생’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동의 현실을 때론 참혹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러나 무심히 툭 던지는 농담처럼 담담하게 그려낸다. 먹고살기 위한 일의 고단함을 노래하지만 두루뭉술하게 노동현실을 비판하지도, 비극적 인식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시집에는 무언가를 주장하는 구호 또한 없다. “깰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바닥”(「밀가루 시멘트」)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근무일지」) “하루떼기”(「잡역부」)의 아슬아슬한 삶과 “땀으로 온몸을 간”(「건너 건너 아는 사람」)하며 노역과 다름없는 혹독한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는 “항거불능”(「사냥철」)의 노동현실을 “시멘트 가래”(「당신의 외국어」)가 끓는 목소리로 그저 들려줄 뿐이다.

시인이 겪어온 숱한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터에서 안전은 번거로운 지침이 되고 인격은 말살된다. 시에 묘사된 터무니없이 척박한 근무환경은 요즘도 심심치 않게 미디어를 달궜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작업장의 인명사고와 재난적 상황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킨다. 하지만 시를 계속 따라 읽다보면 그 암담한 노동현실이 비단 ‘변두리 노동’의 극단적 상황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매일같이 “컨베이어의 지시”를 받으며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순종과 침묵”(「홀로 코스트코 홀세일」)의 연속이자,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썩은 뿌리가 우울처럼 나뒹구는”(「옥상에서 우리들은 운동장 하늘」) ‘폐쇄병동’ 같은, 현대사회 노동의 가혹한 본질을 시인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목소리가 가슴을 짓누르며 “휙― 건설 중이고 또 휙― 철거되”(「굴러온」)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생산/소비사회에서 노동은 “해체되기 위한 쇼”로 전락하고 “온전한 형태를 가져본 적 없는”(「해체되기 위한 쇼」) 노동자는 생산을 위한 도구로 소모된다.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공사장서 굴러다니는 돌멩이”(「당신의 외국어」) 신세가 되어버린 시인이 내뱉는 “나는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플란다스의 고양이」)라는 비탄에 오늘도 고된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 모두가 젖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시인은 노동하는 ‘나’와 ‘너’를 구별하지 않는다.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는 여러 인칭과 목소리가 뒤섞이고,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들이 떠들썩하게 들려온다. “말이 서툴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칸막이”(「초원의 벽」)에 고립된 외국인 노동자들조차 다른 동료들과 같이 그저 ‘걔’(개)로 불리며 “말 잘 듣는 개 노릇 톡톡히”(「오산 스타렉스」) 할 뿐이다. 개처럼 일하고 걔로 호명되는 누구나 ‘우리’가 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달프다. 하지만 현실의 고통과 애환을 정성스레 빚어낸 “시는 삶처럼 빛난다”(추천사). 시어들의 성찬으로 빽빽한 시들은 리듬감 넘치는 산문처럼, 현장을 취재하는 르뽀처럼 세상을 비춘다. 늦은 밤 지하철 안 잠에 취해 흔들리고 생활의 고달픔에 출렁이는 사람들의 “잠물결”이 흐르는 강물의 “잔물결”(「밤섬」)과 뒤섞이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차마 아름답기만 하다고는 못할, 그러나 아름답지 않고는 못 배길 우리네 인생의 술렁이는 실체를 드러내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그래서 시를 쓴다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인은 ‘몸뚱이’ 하나만으로 살아간다. “좋나 해도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남구로역」)고, “누군가 옆에 있어도 결국 혼자”(「점입가경」)일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시인은 “살아 있다는 사실의 가소로움과 노여움”(「나는 굶는다」)을 곱씹어본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하락하고 노동자로서의 자격마저 부정당하는 암울한 시대. 그럼에도 시인은 노동시의 전망조차 희미해진 자리에서 눈물겨운 시를 쓰고, 희망도 미래도 찾기 어려운 노동을 계속하면서 끝내 살아갈 것이다. “가득 찬 고통과 만개한 고통”(「시체공시소」)뿐인 이 세계 저편에는 “또다른 지구”가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하염없이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가다듬고서 “반짝이는 인공위성”(「오무아무아」)을 찾아 성큼성큼 나아갈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건네는 시인의 한마디 말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살아가십시오.”(‘시인의 말’)

 

 

[본문 발췌]

말귀만 알아먹어도 끼니 걱정 안 한다 해서 돌고 돌았더니, 공사장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됐습니다. 콘크리트 그늘에서 가랑비 세고 있습니다. 시멘트 가래가 굳으면 목구멍을 막아서 쎄― 소리가 나는데. 알 듯도 모를 듯도, 품삯을 받았으면 흥이라도 더할 텐데. 귀에 익었으면 장단이라도 딱 맞추겠습니다. 천장에 얽히고설킨 말들. 벽에 흉터 난 말들. 수도관에서 떨어지는 말들. 전선 타고 오가는 말들. 그거 염불인가요? 한국말이지요? 벌건 낯짝들이 대낮부터 입 벌려 웃는데, 그거 비웃는 거 아니지요? (…) 까마귀를 구워삶으면서 물어봤더니, 뭐라고요? 쓰지 말라고요? 아아, 건설표준어 준수하라고요. 대체 언제부터랍니까? 지금부터 잡담 잡설 중지하시고, 안전장구 착용하셨으면 꼭대기 올라가서 매달려보랍니다. 여기는 좁고 일할 노인네는 많다고. 

―「당신의 외국어」 부분

 

머리 돌아간 선풍기 날개 달고 돌고 수레 끄는 사람들 돌아버리기 전에 먼지바람 일고 무너지고 그는 화물 꾸러미에 깔려 일어날 수 없다 화물차는 달리고 싣고 나른다 컨베이어 벨트는 쓰러진 그를 흘려보낸다 분류되면 옮겨지고 수레에 싣고 실리고 그를 짐짝 사이에 잠시 낑겨놓는다 벨트 가동되면 벨소리 징하게 울린다 미친 듯이 밀려온다 달려들고 돌고 돌고 분류하고 분류되고 쌓여 있는 상자들 육면체 모서리 구겨지고 짜부라지고 주소지 불명이라 한편으로 내동댕이쳤다 누락된 짐짝 되어서 서로 원수지지 말자 찌그러지지 않게 옮겨라 주임도 한마디 던진다

―「신수동 수화물 터미널」 부분

 

탕 그릇에 수저 휘저으면 식구라 불렀다 킁킁 냄새 맡고들 기어나오는지 어제 왔다는 걔 손놀림이 빠르다는 걔 장반장 밑에서 일 시작하는 걔 홀연히 사라지는 걔 그저 걔 너를 걔라 불렀다 목청껏 울었고 미친 듯이 짖었다 종종 내 옆에 존재했다 했지만 보고 있자니 멀어서 형태만 가늠해본다 저게 사람새끼인지 건설되는 꼴

 

(…)

 

사람들은 너를 걔라 불렀다 승합차에 차곡차곡 오르는 사람들은 소리가 사라졌다 듣지 못했다 누군가는 창밖을 보고 있다 누군가는 하품을 한다 누군가는 시동을 걸고 누군가는 누군가는… 맞은편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 녀석들은 돌아올 거라 한다 너를 알고 있다 기척 없이 다가온 너에게 돌을 던졌다 꼬리를 흔들어도 돌을 던졌다 괴사한 가죽으로 파리가 날고 있다 매질을 했다 흐르는 침 좀 봐라 목을 매고 매질을 했다 발가벗겨진 너는 그슬린 그 밤에 악다물고 너는

―「살갗 아래」 부분

 

우리는, 파이프를 세우고 파이프를 눕힌다 서로에게 기울지 않아도 될 만큼 다져진 바닥 끝을 끝에 조심히 내밀면 끝까지 끝을 내민다 체결하듯 서로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결속 둔중한 파이프, 그 파이프를 조이면 여전히 세워지고 여전히 일어서고 여전히 놓인다 우리는, (…) 형태를 갖추면 해체되는 무대에서 외줄을 타자 쇠막대 하나를 쥐자 매달린, 붕붕 뜨는 몸짓들이 있다 아슬아슬 한발에 외줄타기 다음 한발을 내딛는 몸부림은 무대를 기웃거리는 단역배우의 리허설 아시바 쇠파이프는 건설되는 모든 형태보다 먼저 서야 하고 먼저 쓰러져야 하는 해체를 위한 약속, 존재하지 않았던 온전한 형태를 가져본 적 없는 우리는, 모든 다면체를 위한 우리는

―「해체되기 위한 쇼」 부분

 

문 앞 지키던 길고양이 새끼들과 떠났습니다 나는 마땅히 떠날 곳이 없어 벽에 망치질을 합니다 오래도록 사용한 장도리 손가락 찧고 대갈못조차 멀리 도망갑니다 걸어둘 곳 없는 목 칭칭 감긴 목 늘어지는 목 쌓인 먼지 훑습니다 방바닥 초병 서는 머리카락 소매 끝에 매달려 대롱대롱 새우잠 청하면 벌어진 밑창 안전화는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함박눈이라도 내릴 태세로 먹구름 피어오르는 공구가방 오목거울 속 그는 떡진 머리 누런 이빨 빙긋 웃습니다 탕, 탕, 탕 나는 점 하나 벽에 찍을 수 없고 탕, 탕, 탕 아무것도 채울 수가 없어서 탕, 탕, 탕 가슴을 두드리면 그곳은 냉골입니다

―「즈음에」 전문

 

나는 매일같이 컨베이어의 지시를 받는다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어 벨소리가 울릴 때, 누군가 사라진다 마른침을 삼켰을지 몰라, 고꾸라지면서… (…) 컨베이어는 멈춘 적이 없어 순종과 침묵, 피고름보다 진득한 흑빛, 잔인한 눈빛 네 바퀴 밀차에 녹슨 부품들이 쌓여만 가는데 나는 묶여 있고 살아 있고 켜켜이 쌓이다 지친 먼지들이 떠돌다 사라지고 있어 시작을 알리는 방송도 중얼거렸고 끝을 알리는 방송도 중얼거렸어 날개 끝에 먼지 실밥 돌고 있는 환풍기 작업장의 선풍기 돌고, 빙빙 둘러대는 소리가 창고를 채우고 있어

―「홀로 코스트코 홀세일」 부분

 

푸드마켓에서 나는 무엇을 들고 나왔나? 주민센터는 가볍게 살지 말라 했거늘, 나는 혼자서 가자 했는데, 한평 남짓 방에 누우면 천장 윗방에 누군가는 영영 떠나버려서, 벽 너머 옆방에서는 무엇이 들렸나? 작디작은 창문에는 무엇이 보였나? 달 밤 도, 진창 속 밑창 같은 생이여 활이여, 가볍게 살지 말자 했거늘, 내뱉는 말조차 가벼워 한없이 가벼워 중얼거리다, 흩 어 집 니 다, 내 탓 입 니 까?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양초를 꺼내 든 밤 타오르는 촛불은 누군가의 입김에도 흔들린답니다

―「푸드마켓」 부분

 

나란 놈은 밟아도 꿈틀거리지 못했다 나를 은폐하기 위해 조작하기 위해 희석시킨다 고프다 고프다 덜어내고 잘라내고 비우고 뽑아버리고 나를 삭둑 너를 삭둑 잘라야 한다 나를, 끊어버리고 싶다 나의 모가지를 댕강 세치 혀를 댕강 귀때기를 댕강 댕강 댕강 도망치고 싶다 도망가면 안 된다 도망가야 한다 너는 도망갈 수 없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나약함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가소로움과 노여움 이렇게 숨 쉬고만 있어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분노보다는 지금 몹시 짜증 남, 이렇게 등 뒤 바짝 들러붙어 끈덕지게 들러붙어 떨쳐낼 수 없는, 없어서 너를 버리기로 했다 나를 비우기로 했다

―「나는 굶는다」 부분

 

 

[추천사]

가끔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언어는 삶을 온전히 받아안을 수 있는가. 시는 삶의 어마어마한 비밀들을 캐낼 수 있는가. 질문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가. 이용훈의 시를 읽고 나서 나는 점점 더 깊은 구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삶 앞에서 시라니. 

이용훈 시인은 성큼성큼 나아간다. 삶이나 시나 매한가지. 그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일 뿐이다. 노동이 만들어낸 생생한 시의 세계는 문학을 통해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뼈아픈 아름다움의 실체를 드러낼 뿐이다. 

일용직 노동자, 모텔 청소부, 정신병원 간호보조원, 택배 노동자, 코로나 폐기물 청소부…… 시인의 이력은 시보다 빛난다. 언어로 쓰이는 고통보다 깊다. “탕 그릇에 수저 휘저으면 식구라 불렀”던 사람들이 아픔과 질곡에 함께 놓여 있지만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처절한 현실.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꼬리를 흔들어도 돌을 던”지는 현실에서 “발가벗겨진” 네가, “그슬린 그 밤에 악다물고” 버티는 개인지 “걔”인지 헛갈리는 네가 있다(「살갗 아래」). 이 날것의 장면을 두고 무슨 말을 할까.

하지만 시는 삶처럼 빛난다. 삶의 세부가 어떤 철학적 의미보다 아름답다면 바로 이용훈의 시가 그렇다. 감히 생각해본다. 이렇게 세부의 면면이 시의 언어와 한 몸인 시인이 있었던가? “또다른 지구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보다 더 사람인, “반짝이는 인공위성”을 찾아 “은밀히 하늘을 파헤치”는(「오무아무아」), 삶과 시가 하나인 세계. 그 세계가 여기에 있다. 

이영주 시인

 

 

- 시인의 말

 

살아가십시오.

이용훈

 

 

[시인 소개]

이용훈(李鎔勳) 시인은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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