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감, 빛나는 성장이 상영되는 우리만의 영화제
캐스팅: 영화관 소설집
[책 소개]
“극장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죠.
그 어떤 마법이라도.”
조예은ㆍ윤성희ㆍ김현ㆍ박서련ㆍ정은ㆍ조해진ㆍ한정현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영화관에서 들려주는 일곱 편의 이야기
오늘의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소설집 『캐스팅』이 꿈꾸는돌 34권으로 출간되었다.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를 펴내며 지금 젊은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조예은의 신작 단편 「캐스팅」이 표제작으로 수록되었다. 읽고 나면 우리 삶을 끝내 따뜻하게 긍정하게 되는 마법을 보여 주는 윤성희의 소설과, 외로운 마음들을 사려 깊은 눈길로 보듬는 조해진의 소설 역시 독자들의 기대를 모은다. 자신만의 섬세한 언어로 아직 충분히 발굴되지 못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한정현과, 유머 속에 가슴 찡한 순간들을 숨겨 놓은 박서련의 소설 또한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와 에세이 등 다양한 글쓰기를 넘나들며 고유한 감수성을 펼쳐 온 김현과 정은의 단편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이제까지 청소년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작가들이 그려 낸 10대 주인공의 표정이 사뭇 궁금해지는 소설집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공간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때로는 풋풋하고, 때로는 뭉클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우리 각자가 주인공인 ‘삶’이라는 한 편의 영화
표제작인 조예은의 「캐스팅」에는 육상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앞날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극장에서 영화 속에서 현실 세계로 나온 미소년 좀비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연처럼 보이는 삶에도 빛나는 주인공의 순간이 있음을 깨닫는다. 10대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풋풋한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미스터리 좀비 로맨스 모험담이다.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펴내며 주목받고 있는 조예은은 이 소설의 ‘작가의 말’에서 “최대한 귀엽고 발랄한 청춘 모험담을 써야겠다!” 결심하고 쓴 작품이라 밝히기도 했다.
한국 문학 독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이름 윤성희와 조해진, 두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진실한 온기를 전한다. 윤성희의 「마법사들」에는 극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각자 혼자서만 간직했던 기억을 공유하는 두 친구가 등장한다. 조해진의 「소다현의 극장에서」는 엄마의 암 투병을 계기로 자신을 입양하기로 결정했던 엄마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보는 딸의 이야기를 그렸다.
시와 에세이로 널리 사랑받아 온 김현은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에 이어 또 한번 소설로 독자들을 찾는다. 기억하고 싶은 이름, 믿고 싶은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박서련의 「안녕, 장수극장」은 작은 동네, 작은 기억을 지켜 온 극장에게 건네는 뭉클한 작별 인사다. 정은의 「사라진 사람」은 집에서 OTT 서비스로 손쉽게 영화를 접하는 시대에, 여전히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마법 같은 순간들을 불러낸다. 한정현의 「여름잠」은 1981년에 광주를 찾았던 미국인 영화 연구자를 통해 잠과 꿈을 잃어버린 채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인물을 복원하고자 한다.
영화 속 명대사처럼 잊지 못할 청춘의 한 장면!
따뜻한 공감, 빛나는 성장이 상영되는 우리만의 영화제
『캐스팅』에 실린 소설들은 ‘영화관’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일곱 가지 다채로운 빛깔로 전한다. 팬데믹과 새로운 매체들의 출현을 맞이하며 한동안 일상에서 멀어진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오랜 시간 울고 웃었던 우리의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린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일곱 편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당신의 캐스팅을 기다리고 있다.
[차례]
조예은 | 캐스팅
윤성희 | 마법사들
김 현 | 믿을 수 있나요
박서련 | 안녕, 장수극장
정 은 | 사라진 사람
조해진 | 소다현의 극장에서
한정현 | 여름잠
[본문 중에서]
문득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달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초조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나는 초를 세지도, 기록과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내 옆에는 비틀거리는 미소년 좀비가 함께였다.
―조예은 「캐스팅」, 40면
“두 번째 죽을 때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덕분에 무섭지 않아.”
나는 기주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너무 차가워서 언제 녹아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손을. 그리고 속삭였다.
“엔딩 크레디트 위에서 열다섯 번째. 난 절대 안 잊을 거야, 네 이름.”
―조예은 「캐스팅」, 47~48면
“아, 놀이공원. 그런 곳에서 밤새우고 싶다.” 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놀이공원이라. 틀림없이 귀신이 수백 명 있을 것이다. 성규에게 거긴 무서워서 안 된다는 말을 하려다 문득 좋은 곳이 생각났다. “영화관에서 밤새우자. 마지막 영화 보고 숨어 있자.” 나는 성규에게 영화관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윤성희 「마법사들」, 65면
“뛰기 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상상해. 그러면 몸이 슝 날아오를 거야.” 성규는 구름판에 서서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봐라.” 어머니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하늘에 무지개가 있었다. 어린 성규가 울 때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성규를 달랬다. 저기 봐라, 하고. 어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늘 근사한 풍경이 있었다. 성규는 눈을 떴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멀리뛰기를 했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게 느껴졌다. 비눗방울은 오래, 오래 공중에 떠 있었다. 착지를 한 다음 성규가 소리쳤다. “슝 날았죠? 봤어요?”
―윤성희 「마법사들」, 73면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민이 손을 내밀어 자신을 어둠의 출구로, 빛의 입구로 이끌어 가 주길 바랐다. 그러니까 죽기 전에.
―김현 「믿을 수 있나요」, 84면
산호는 민을 만나고(무락 해변에서의 불꽃놀이), 친구가 되고(수월 포구에서 야간 수영을 했던 날), 텅 빈 교정을 몇 바퀴씩 돌고(빛나는 별과 달), 청량한 바람에 휩싸인 채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우정인지 사랑인지 결론 내릴 수 없어—사실은 결론 내리기 두려워서—민을 피해 다녔던 그 모든 계절의 일들을 한순간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너를 믿어. 그래야 나를 믿지. 민이 자신을 살아 있게 한다는 사실을.
―김현 「믿을 수 있나요」, 84~85면
민은 ‘기억을 위한 경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헤아려 보다가 마음이라는 괄호를 열고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하나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모든 것을 일러 부르는 이름을.
―김현 「믿을 수 있나요」, 88면
산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민의 이마를 검지로 문질렀고, 민은 가만히 기다렸다. 산호의 웃음이 자기 마음 끝까지 닿기를.
―김현 「믿을 수 있나요」, 112면
나는 오른편에 앉은 아버지를 보았다.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울음을 삼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우리 극장에서 틀자.”
아버지는 그 엉성한 영상을 영화라고 불렀다. 아버지와 내가 같은 생각을 했다.
―박서련 「안녕, 장수극장」, 143면
어째서 그 생각을 여태 하지 못했는지 이상할 만큼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장수극장 마지막 영화의 주인공은 장수극장이 되어야 했다. 공동 주연으로는 장수극장이 자리 잡았던 작고 심심한 마을이 나와야 했다.
―박서련 「안녕, 장수극장」, 144면
“사실 저는 영사 일이 직업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이기도 해서 그런지, 영화 상영이 끝나면 모두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간다고 생각하지만요.”
“한 영화가 사람 인생을 바꿔 놓을 리가 없잖아요.”
“영화는 사람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해요.”
―정은 「사라진 사람」, 162~163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죠. 그 어떤 마법이라도.”
―정은 「사라진 사람」, 165면
나는 화장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어제랑 똑같은 세상인데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푸르고 가로수에 달린 연두색 잎들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거리를 바삐 걷는 사람들도 똑같은데 다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극장에선 마법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고, 어쩌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마법이고, 나는 마법 같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몰라. 학교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정은 「사라진 사람」, 171면
엄마가 그래, 그럴게, 대답한 뒤 아주 짧게 웃었고 그 웃음소리는 공기 속에서 입자처럼 떠도는 듯했다. 엄마는 알까, 요양원에서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는 걸……. 이전보다 자주 웃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자라야 하는 사람인 양 모든 순간의 표정이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확률이 높아진 지금, 어쩌면 엄마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 199~200면
곧 택시에 오른 나는 몸을 돌려 뒤창을 보았고 엄마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어떤 영화의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지금 배우는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는 중일까. 페이드아웃으로 이 장면이 흐릿해진다면 배우는 어떤 신으로 이동하게 될까. (…) 지금 엄마의 세계 안에서 음악이 흐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생애를 에워싸는 음악이 밤의 나뭇잎과 들꽃과 흙길 위의 돌에서도 빚어진다면 엄마는 훗날 이 장면을 조금 덜 외롭게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 200면
과학 수업이 끝난 뒤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한 아이에게 말을 건네기 직전, 떨리고 두려우면서도 끝까지 용감하자고 다짐했을 소다현의 한 시절이 스크린 위로 또 하나의 영화인 양 영사되고 있었다.
―조해진 「소다현의 극장에서」, 201면
사람들은 왜 항상 끝에서 시작을 그리워하는 걸까. 시작할 땐 끝을 염두에 두지 않는데. 심지어 영화를 볼 때도 그렇다. 저 세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어서일까, 영화의 시작에선 끝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다. 언젠가 반드시 끝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말이다.
―한정현 「여름잠」, 211면
그렇게 말하며 퍼트리샤는 쪽지 모양으로 접은 호두과자 봉지를 내게 건네 왔다. 나는 이걸 빈 호두과자 봉지라고 해야 할지 쪽지라고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한정현 「여름잠」, 225면
“이제 그 사람에게 잠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꿈을요. 잠을요.”
내가 들은 것을 모두 말할 생각이에요, 기억이 나는 그대로요. 그렇게 말하며 퍼트리샤는 내게 미소를 보였다. 그것은 어깨를 으쓱하며 지어 보였던 이전의 미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한정현 「여름잠」, 231~232면
[작가 소개]
조예은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스노볼 드라이브』,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썼다.
윤성희
1999년 「레고로 만든 집」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소설집 『거기, 당신?』 『감기』 『날마다 만우절』 등을 썼다. 제4회 김승옥문학상, 제52회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김현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낮의 해변에서 혼자』, 산문집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등을 썼고, 소설집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박서련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 「미키마우스 클럽」으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더 셜리 클럽』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소설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등을 썼다.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제12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정은
2018년 『산책을 듣는 시간』으로 제16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에세이 『커피와 담배』를 썼고, 소설집 『앙상블』 『장래 희망은 함박눈』 『바깥은 준비됐어』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조해진
2004년 「여자에게 길을 묻다」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 소설집 『빛의 호위』 『환한 숨』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정현
2015년 「아돌프와 알버트의 언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마고』,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등을 썼다.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제12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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