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초등 교과연계 추천목록 청소년 주제별 추천도서 목록

노래하는 한국사

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22-11-14 10:06:36

스물여덟 차례 노래의 무대에서 한국사를 만나다 

노래하는 한국사


[책 소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는 위협적인 가사의 고대 건국설화부터 

“죄도 많은 청춘이라 비 나리는 호남선에”라고 노래한 현대사에 얽힌 애달픔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와 시가로 ‘역사가 된 삶과 사건, 사람’을 만나다!! 

시와 노래 속에는 기쁜 감정도 담겨 있지만 사회를 향한 비판 의식이 더 많이 담겨 있다

 

저자는 10년이 훨씬 넘게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역사 교사다. 그는 “학생들과 의미 있게 수업하기 위해 늘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공부하지만, 여전히 한국사 수업에 대한 정답은 찾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언젠가 그 길 위에서 학생들과 함께 재미있게 수업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근현대 시기에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노래를 수업 시간에 함께 들으며 ‘이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대체 그 시대에는 왜 사람들이 마음대로 노래도 못 불렀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았던 시간이었다. 그때 학생들은 지금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른 노래들을 들으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가사 내용을 시대 분위기에 비추어 해석해보면서 ‘금지곡이란 것이 왜 생겨났을까’ ‘금지곡이 된 노래엔 어떤 사연이 있을까’를 분석했다. 나아가 당시 상황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흥미진진한 피드백이 오갔던’ 당시의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이다. 

 

본 책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노래를 소개할 때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꾸몄다. 따라서 각 장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막’으로 구분했고, 각 막에는 ‘첫 번째 무대’와 같은 식으로 총 28회 무대를 통해 노래와 시가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독자들은 각 무대에 올라온 시와 노래를 바탕으로 과거 특정 시대의 분위기와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소개한 노래들이 단순히 과거의 흘러간 노래가 아닌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노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각 본문의 끝에는 교실 수업에서 토론의 주제나 쪽글 쓰기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이슈들을 ‘커튼콜’이란 이름 아래 다루었는데, 이 부분은 “역사의 과거와 현대란 단절되거나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성을 지닌 것”임을 체험하는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사가 외워야 할 것만 많고, 지루하고, 따분한 과목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노래하는 한국사』를 통해 독자들은 노래를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노래를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면서 과거의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음을, 우리 역사 속 굽이굽이마다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한국사를 공부하는 많은 학생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하느라 이 시간에도 고민하고 있을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물여덟 차례 노래의 무대에서 한국사를 만나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역사를 소재로 한 긴 노래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사실들은 언제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국사 시간이나 고전문학 시간에 배우는 내용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산물이다. 건국 시조를 알에서 태어난 신비한 인물로 묘사했던 신화들은 <구지가龜旨歌> 같은 노래에 담겼고, 골품제 같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좌절했던 천재 최치원의 마음은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가에 담겨 있다. 고려 백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시리화沙里花>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가 고향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던 조선인 도공들의 서러움은 <조선가>에 담겨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갔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의 비통함은 <눈물 젖은 두만강>에,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준 자전거왕 엄복동의 이야기는 노래 <자전거>에 담겼다. 6·25 전쟁 때 북으로 끌려간 남편을 그리워했던 부인의 심정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담겼고, 광복 이후 첫 번째 금지곡이 된 <여수야화>는 1948년 10월 19일에 발생한 ‘여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건국설화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다양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가 오롯이 노래에 담겨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흘러간 옛 노래’란 없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야기는 ‘오늘의 노래’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시와 노래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내용을 더 잘 이해하려면 그것들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시와 노래에는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물관이나 책에서 만나온 ‘오래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일하고 미워하고 투쟁했다. 그 삶을 오롯이 담아낸 게 일국의 역사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듣는 지금의 대중가요를 잘 살펴보면 지금 사회의 분위기, 사람들의 생각, 감정 등도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돌 그룹 BTS가 10대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그들의 노래가 젊은 세대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노래 가사에 담아 공감을 끌어내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해준 덕분이다. 노래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느 시대든 있어온 갈등과 격차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어떠한 미래를 꿈꾸었는지 때로 비판하고 때로 격려해준다. 물론 노래 한 곡으로 갑자기 사회 분위기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내용에 공감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노래 가사가 꼬집은 사회 문제에 공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등장할 것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노래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차례다. 

 

 

[미리보기] 


 


[저자 소개]

지은이_조혜영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였습니다. 현재 경기도에서 역사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3학년 때 엄마와 함께 갔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과거 사람들의 흔적이 너무도 신기해 몇 시간을 박물관 구경에 몰두했던 꼬맹이가 이제는 역사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15년째 과거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교실을 넘어 더 많은 학생과 함께 우리 역사를 생각해보고 싶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차례]

저자의 말 / 일러두기 

무대를 시작하며 _ 노래 따라 역사 속으로 

1막 고대의 노래

첫 번째 무대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_백발의 그 남자는 왜 물속으로 들어갔을까?

두 번째 무대 〈구지가 龜旨歌〉_사람이 어떻게 알에서 태어나죠?

세 번째 무대 〈황조가 黃鳥歌〉_이건 그냥 이별 노래가 아닙니다

네 번째 무대 〈여수장우중문시 與隋將于仲文詩〉_이제 그만 항복하는 게 어때?

다섯 번째 무대 〈찬기파랑가 讚耆婆郞歌〉_모든 사람이 우러르는 그대, 화랑

여섯 번째 무대 〈도솔가 兜率歌〉_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뜨다니!

일곱 번째 무대 〈추야우중 秋夜雨中〉_신라 최고의 천재가 좌절한 이유

여덟 번째 무대 〈정읍사 井邑詞〉_그대를 기다리다가 나는 돌이 되었어요

아홉 번째 무대 〈서동요 薯童謠〉_백제 남자와 신라 여성의 결혼, 가능한가요?

2막 고려의 노래

열 번째 무대 〈정과정 鄭瓜亭〉_왕이시여, 언제 저를 다시 불러주시렵니까?

열한 번째 무대 〈구름이 무심하단 말이〉_폐하, 간신을 멀리하소서!

열두 번째 무대 〈사리화 沙里花〉_고려 백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

3막 조선의 노래

열세 번째 무대 〈단심가 丹心歌〉 〈하여가 何如歌 〉_조선 최고의 랩 배틀, 명분이냐 현실이냐!

열네 번째 무대 〈방 안에 켰는 촛불〉_방 안의 저 촛불, 내 마음과 같이 타들어 가네

열다섯 번째 무대 〈조선가〉_그들은 왜 일본으로 끌려갔을까?

열여섯 번째 무대 〈가노라 삼각산아〉_명분의 한계에 빠진 조선의 운명

열일곱 번째 무대 〈두꺼비 파리를 물고〉_변화의 물결 속에 울고 웃었던 사람들

4막 개화기의 노래

열여덟 번째 무대 〈경복궁 타령〉_백성들의 원망을 샀던 그 사람의 정체는?

열아홉 번째 무대 〈아리랑 타령〉_개화의 물결 속에 소외된 사람들의 노래

스무 번째 무대 〈새야 새야 파랑새야〉_그 시절 사람들의 파랑새는 무엇이었을까?

스물한 번째 무대 〈애국하는 노래〉_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문이 만들어지던 그때

5막 일제 강점기의 노래

스물두 번째 무대 〈눈물 젖은 두만강〉_그날 밤, 여인이 슬프게 운 이유는?

스물세 번째 무대 〈봉선화〉_그 사람이 친일의 길을 걸어간 이유

스물네 번째 무대 〈자전거〉_어두운 시절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자전거 왕

6막 해방 이후의 노래

스물다섯 번째 무대 〈귀국선〉_해방의 감격을 안고 돌아온 사람들

스물여섯 번째 무대 〈가거라 삼팔선〉_또 다른 전쟁의 시작,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이유

스물일곱 번째 무대 〈단장의 미아리 고개〉_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아십니까?

스물여덟 번째 무대 〈여수야화〉_이 노래를 왜 부르면 안 되나요?

무대를 마치며_노래는 시대를 노래한다



[본문 미리보기] 

이렇게 혼란에 빠진 신라를 보며 고뇌하던 최치원은 894년 진성여왕에게 10개 항목의 개혁안을 올렸습니다. 최치원이 올린 개혁안의 내용은 현재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라에 돌아와 10여 년간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담당하며 그가 직접 목격한 진골 귀족의 사치와 부패, 지방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 모습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개혁안을 작성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진성여왕은 이를 받아들여 6두품이었던 최치원

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관직을 주고, 그가 제안한 개혁을 실시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앙의 진골 귀족들에게 최치원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죠. 개혁안의 내용은 진골 귀족들이 그동안 누리고 있던 이익들을 제한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결국 진성여왕은 즉위 11년 만에 정치적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왕위에서 물러났고, 그 뒤를 이어 효공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신라는 점점 더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골품제도의 한계를 벗어나 꿈을 펼치기 위해 당으로 유학을 떠났던 최치원은 희망을 품고 다시 신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신분적인 한계뿐 아니라 정치적 혼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답답한 심정을 담아 최치원이 지은 시가 바로 〈추야우중〉입니다. 

 

가을바람에 이렇게 힘들여 읊고 있건만 (秋風唯苦吟)

세상 어디에도 알아주는 이 없네 (世路少知音)

한밤중 창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窓外三更雨)

등불 앞에 있는 마음은 만 리 밖으로 달리네 (燈前萬里心)_〈추야우중秋夜雨中〉신라 최고의 천재가 좌절한 이유 

 

공주 명학소에 살고 있던 망이와 망소이도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자신들에게 과도하게 부과된 부역과 차별 대우에 맞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은 충청도 지역을 휩쓸 정도였어요. (…) 무신 집권기를 살았던 이규보는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힘들여 농사를 지어 군자를 봉양하니

그들을 일컬어 농부라 하네

알몸을 얇은 천으로 가리고는

매일같이 얼마만큼 땅을 갈았던가

벼 싹이 겨우 파릇파릇 돋아나면

고생스럽게 호미로 김을 맨다

풍년이 들어 많은 곡식을 거두어도

 

관청의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지 못하고 모조리 빼앗겨

하나도 소유하지 못하고

땅을 파서 뿌리를 캐 먹다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다오

 

열심히 농사를 짓고 일을 해도, 탐관오리나 권력자에게 모조리 빼앗기고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죠. 농민들은 그런 지배층의 수탈을 노래로 풍자하며 비판하였습니다.

 

참새는 어디서 날아왔는고 (黃雀何方來去飛)

일 년 농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一年農事不曾知)

늙은 홀아비 홀로 농사지었는데 (鰥翁獨自耕耘了)

밭의 벼와 기장을 다 없애 놓았네 (耗盡田中禾黍爲)

 

노래 속의 참새는 일 년 동안 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빼앗아 가는 권력자 또는 탐관오리를 상징합니다. 늙은 홀아비는 힘없는 농민을 상징하죠. 1년 동안 곡식을 재배하기 위해 애쓴 농민의 노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자나 탐관오리의 모습을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모습으로 풍자했는데요. 이 노래의 제목은 〈사리화 沙里花 〉입니다. 노래의 제목으로 사용된 사리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 沙 ’에서 목이 쉰다는 의미를, ‘리 里 ’에서 근심한다는 의미를 찾아내어 농민이 목이 쉬도록 沙 근심하여 里 얻는 꽃 花 즉, 곡식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_〈사리화 沙里花〉고려 백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

 

조선의 신분제도가 흔들리게 된 또 다른 이유로 붕당 간의 극한 대립 속에 몰락한 양반들이 생겼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붕당 간의 비판과 견제에 의한 건전한 정치 형태는 사라집니다. 상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붕당만이 권력을 쥐고자 하는 극한 대립의 상황이 펼쳐지면서 정치 권력에서 밀려난 붕당의 양반들은 정치의 중심인 한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요. 그중에는 신분은 양반일지언정 당장 먹고살길이 막막한 양반들도 존재했습니다. 이런 양반들을 바라보는 부유한 농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몰락한 양반 중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양반 체면을 벗어던진 채 생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양반으로서의 체통을 지키겠다며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양반 신분을 내세우며 백성들을

얕보는 사람도 있었고요. 당시 사람들은 이런 양반들을 풍자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거름더미 위에 뛰어올라 앉아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흰 송골매가 떠 있거늘

가슴이 섬뜩하여 펄쩍 뛰어 내닫다가 거름더미 아래 자빠졌구나

마침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피멍이 들 뻔했구나

 

위 시 속의 허세 가득한 두꺼비가 바로 양반입니다. 두꺼비가 물고 있는 파리는 힘없는 백성이고요. 두꺼비는 자신보다 약한 파리를 물고 의기양양하게 거름더미 위에 앉았지만, 자신보다 센 송골매를 보자 바로 겁을 먹고 뛰어내리면서 자빠지고 맙니다. 백성들 앞에서는 떵떵거리다가 자신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비굴하게 돌변하는 양반을 보면서 백성들은 참으로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었겠죠. 놀라 자빠지면서도 끝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두꺼비는 당시 백성들이 비판하고 싶은 양반의 이중적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_〈두꺼비 파리를 물고〉변화의 물결 속에 울고 웃었던 사람들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인을 상대로 자전거를 판매하는 상점들도 생겼는데요. 자전거 판매상들은 홍보를 위해 아마추어 자전거 경기를 열기도 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가는 박진감 넘치는 자전거 경기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였고, 점차 경기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국적인 자전거 경주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경주 대회를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설움을 씻어주는 최고의 인기 스타가 등장했습니다.

 

전주에서는 예정과 같이 지난 16일에 호남 자전거 대회를 하였는데 그 전날에는 날이 흐려서 매우 걱정을 하였으나 당일은 다행히 화창하여 수만의 군중은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 운동장으로 모였다. 참가한 선수는 조선 자전거에 유명한 경성의 엄복동과 평양의 강경 등 각 도와 호남 각지에서 많이 모였고, 일본에서까지 선수들이 참여하였다. 총 칠십여 명의 선수는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활발하고 용맹스러운 자태를 서로 자랑하였다. 오전에는 예선 경주를 하고, 오후에는 우승기 쟁탈 경주를 하였는데 군중의 인기는 심지어 일본 사람까지도 엄복동 군과 전주의 김기문 군에게로 몰렸고, 경기가 시작되자 관객은 더욱 엄군과 김군을 응원하였는데 불행히 김군은 중도에서 중지를 하고, 마흔네 바퀴째 돌 때 엄군까지 넘어지면서 군중은 아연실색하여 어쩔 줄을 모르더니 그래도 조선에 첫째가는 엄군은 그대로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힘을 내어 쫓아가서 남보다 두 바퀴 혹은 세 바퀴를 앞서 명예의 우승기를 수만 관객의 환호 속에 영광스럽게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당일의 자전거 경기 대회는 크게 성황을 이루었으며, 더욱이 우승기는 전부 조선 사람이 차지하고 일본 사람은 한 명뿐이라더라. (1920. 5. 21. 동아일보 기사)

 

경기 도중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남들보다 앞서나가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실력을 보여준 엄복동은 자전거 경주 대회가 탄생시킨 당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당시 일미상회라는 자전거 판매상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엄복동은 1913년 3월 ‘육군기념제 자전거경주연합대회’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해 4월 매일신보사와 경성일보사 주최로 인천, 용산, 평양에서 차례로 열린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거머쥐며 ‘스타 탄생’을 알렸습니다._〈자전거〉어두운 시절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자전거 왕

 

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

우리 집 선돌아범 어디로 갔나

창 없는 빈집 속에 달빛이 새어들면

철없는 새끼들은 웃고만 있네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바람이

북청 간 딸 소식을 전해 주려므나

애미는 이 모양이 되었다만은

우리 딸 살림살이 흐벅지더냐

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오늘엔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

의견이 안 맞으면 따지고 살지

우리 집 태운 사람 얼굴 좀 보자

 

당대의 인기가수 남인수가 부른 이 노래는 1949년 발표된 〈여수야화 麗水夜話 〉입니다. 이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요? 혹시 눈치챈 사람이 있나요? 얼핏 보아도 세 번째 단 가사가 심상치 않죠. 사실 이 노래는 1948년 10월 19일에 발생한 ‘여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였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좌익과 우익의 이념 대립이 치열했던 가운데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봉기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제주 4·3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군과 경찰은 봉기를 강경하게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주민이 무고한 희생을 당했습니다. 봉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군과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한라산에 올라가 저항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제주에서의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한 이승만 정부는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를 제주도로 파견하여 4·3 사건을 진압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제14연대의 좌익 성향 군인들은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제주 출동 명령에 반발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친일파 처단과 남북통일을 주장하며 여수와 순천 지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여수와 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란군을 진압했는데요 이 사건을 ‘여수·순천 10·19 사건’이라고 합니다. 제주 4·3 사건과 마찬가지로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에도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여수와 순천 지역의 수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광복 이후 첫 번째 금지곡이었던 〈여수야화〉는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슬픔과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담은 노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부 수립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지나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좌익과 우익의 갈등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수야화〉는 바로 그때 그 상황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노래의 가사가 불순’하고, ‘민심에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라는 이유로 〈여수야화〉가 발표된 지 약 한 달 만에 금지곡으로 지정합니다._〈여수야화〉이 노래를 왜 부르면 안 되나요?

 

관련 도서

엑셀 다운로드
등록

전체 댓글 [0개]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