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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너와 나의 야자 시간

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22-11-24 16:19:39

소란스러운 고독의 밤을 건너 지금 이곳에서 다시 마주한,  

애틋하게 빛나는 여덟 가지 밤의 풍경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책 소개]

“나는 아름답게 기억한다. 

 어두움 중에 가장 어둡지 않은 색으로 드리워 있는 그 저녁의 하늘을.”

 

소란스러운 고독의 밤을 건너 지금 이곳에서 다시 마주한,  

애틋하게 빛나는 여덟 가지 밤의 풍경들! 

 

밤은 우리를 자라게 하고, 멈추게도 만드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시간이다. 짧고도 길고, 무한하고도 유한한 밤의 시간은 그 끝에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듯 우리의 일상, 궁극의 삶을 명료히 비춘다. 한없이 짙고도 투명한 어둠의 테두리를 한 겹씩 떼어 내다 보면 무엇이 보일까. 누구에게는 ‘처음’이라 부를 설레는 마음이, 누구에게는 ‘그리움’이라 부를 떠나간 이들이, 누구에게는 ‘일탈’ 혹은 ‘안도’라 부를 위안의 증표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우리 각자가 밤의 시간을 건너 마주하는 풍경은 자기만의 반짝임을 품고 고유하게 빛나기에 충분하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은 그 고유한 밤의 풍경들을 차곡이 담아낸 앤솔러지 에세이다. 에세이스트 김달님, 청소년소설 작가 조우리, 농산물 MD 전성배, 국어교사 최지혜, 시인 서윤후, 번역가 장한라, 라디오PD 장도수, 공간기획자 황혜지, 여덟 명의 작가가 청소년 시절 ‘야자(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밤의 어둠보다 더 어둡기도 했고 한낮의 햇볕보다 더 반짝이기도 했던 그 오랜 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각각의 이야기에 담은 그림 작가 임나운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저녁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어둠의 온도를 다채로운 색채로 포근하고도 멋스럽게 풀어낸다. 어둠이 짙어져 가는 계절에 만나게 될 아주 특별한 밤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독자 여러분에게 다정히 건넨다. 



[출판사 리뷰] 

영어덜트 서사의 새로운 프리즘, ‘위 아 영’ 시리즈 03 

“나를 선명하게 감각하는 시간은 밤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에세이, 그림 만화 등의 장르를 통해 생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아 가는 ‘위 아 영We are young’ 시리즈 세 번째 책 『너와 나의 야자 시간』이 출간되었다. 2021년 12월에 펴낸 시리즈 첫 책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가 학창 시절 ‘겨울 방학’ 이야기들을, 2022년 5월에 펴낸 시리즈 두 번째 책 『우리 지금, 썸머』가 ‘여름 방학’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 데 이어 이번 책은 서로 다른 여덟 명의 작가가 야간 자율 학습 시간, 즉 ‘야자 시간’에 있었던 일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은 한없이 짙고도 투명한 어둠의 테두리를 한 겹씩 떼어 내며 조금씩 반짝임에 가까워지는 아름답고 특별한 에세이 여덟 편을 담았다.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세 권의 에세이를 펴내며 독자들의 든든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에세이스트 김달님,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오, 사랑』 『꿈에서 만나』 등 펴내는 작품마다 깊고 진한 감동을 전하는 청소년소설 작가 조우리,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펴내고 에세이 연재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는 등 일과 삶의 묵직한 균형감을 성실히 유지하는 농산물 MD 전성배, 시와 문학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정한 일상을  게을리하지 않는 『좋아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범』의 저자이자 국어교사 최지혜, 시를 쓰고 책을 만들고 에세이를 쓰며 ‘글과 책 사이의 일상’을 촘촘히 그리고 탁월히 채워 나가는 『그만두고 싶은 것들의 목록』저자이자 시인 서윤후,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등 유의미한 원서를 발견하고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가의 삶을 살아가는 장한라, 어렸을 적 듣던 라디오의 낭만을 잊지 못하고 라디오PD가 되었지만 낭만 대신 고달픈 밥벌이에 지쳐 팟캐스트 〈빅 리틀 라이프〉를 제작한 라디오PD 장도수, 0.5평의 독서실 책상에서 대부분의 밤을 보낸 10대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청소년들이 마음껏 관심사를 따라 탐색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만드는 공간기획자 황혜지. 함께 집필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는 ‘야자 시간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밤의 어둠보다 더 어둡기도 했고 한낮의 햇볕보다 더 반짝이기도 했던 그 오랜 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이곳에 포근히 털어놓는다.  

 

여덟 명의 작가는 나이도, 세대도, 살아온 지역도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학교 규칙과 입시 준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던 ‘야자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직 나만의 것’인 마음만은 잃지 않았던 것. 이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 순간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즐거워하고 충분히 실패했다. 그 시간 속에서 우정과 사랑을, 취미와 취향을, 꿈과 미래를 조심스럽지만 단단히 키워 나갔고, 그러하기에 ‘다시 만난’ 지난날의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내가 너라서, 네가 나라서, 나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오늘의 밤도 잘 통과해 가자고. 어둠이 짙어져 가는 계절에 만나게 될 아주 특별한 밤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독자 여러분에게 다정히 건넨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우리가 주고받은 밤의 이야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까보다 더 어두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밝기도 했다.” 

 

첫 번째 에세이 「아임 폴 인 러브 어게인」의 김달님 작가는 ‘좋아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군가 좋아하는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김달님 작가는 문득 들려온 어떤 이름으로부터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 지금은 목소리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열여덟 살의 ‘달님’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사람. 그 아이를 좋아했던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야자 시간을 통해 하나둘 떠올리는 그 시절 기억, 기억의 틈새로 스며드는 소리들……. 비밀을 공유하며 소곤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시끌시끌하게 쉴 틈 없이 떠들기도 했던 목소리.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는 목소리, 용기 내 ‘통화’ 버튼을 누른 뒤 휴대폰 컬러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전화기 너머로, 문자 너머로, 들려오는 듯한 두근거리는 그 밤의 마음들을 나눈다.  

 

두 번째 에세이 「10년 후의 약속」의 조우리 작가는 “너무 흔한 서사지만 우리 가족은 IMF 당시 국가적 경제 비극을 정통으로 맞았다.”고 털어놓으며, 갑작스레 들이닥친 힘겨운 일상에 잠식당한 10대 시절의 장면들을 하나둘 펼쳐 본다. 그 어디에서도 마음 붙일 데 없던 그는 야자 시간을 “당연히 땡땡이치고”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한다. 우울과 불안 사이를 헤매다 집에 도착한 어느 날, 동생이 데리고 온 강아지를 만나게 되고 이후 그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마냥 절망적인 게 아니라 때때로 예상치 못한 기쁨과 놀라움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가면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우리 작가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 번째 에세이 「그 밤의 소리」의 전성배 작가는 10대 시절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된 과거도 아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기술이 있으면 평생을 먹고산다.”는 말이 어른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오갔으니까. 지금도 물론 유효한 말이지만, 당시 그에게 ‘먹고산다는 것’은 이상이나 꿈보다 더욱 가까운 ‘현실’이었다.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그리기보다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일상.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같은 건 모른 척 접어 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처럼 금속으로도 문학을 할 수 있어요. 그건 종이나 나무에 새겨지는 것처럼 쉽게 풍화되지도 않죠.”라고 말하는 귀금속 공예 특성화고 선배의 말을 듣고, 학교의 야간작업을 보러 간다. 그 걸음을 시작으로 새로운 방향의 길이 놓이게 되는데……! 그 밤, 10대의 전성배는 어떤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았을까.  

 

네 번째 에세이 「불꽃놀이」의 배경은 노량진 입시 학원이다. 최지혜 작가의 스무 살 시절은 고3과 다름없는 지루한 입시 생활의 연장이었다. 친구들은 지하철을 타고 대학에 갔지만 재수를 하던 그는 노량진에 있는 입시 학원으로 향했던 것. 서로의 이름을 모르지만 1등부터 100등까지의 이름이 현관 옆 게시판에 대자보로 붙어 있는 곳에서 서열과 등급에 둘러싸여 “익명의 나는 매일 조금씩 작아지고 있”던 시절을 보냈다. 학원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만은 탁 트여 있었기에, 그는 그곳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 그러던 하루는 큰 키의 어떤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왜 계속 나를 쳐다볼까? 혹시 관심 있나? 혼자만의 상상이 커지는 가운데 연달아 사흘을 마주치기에 이르고, 그는 ‘작전’을 짜서 그 아이가 누구인지 찾아내기로 하k. 한여름 밤의 사랑스러운 해프닝이 무미건조한 일상에 건넨 달콤 쌉싸름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에세이 「계피색 꿈」의 서윤후 작가는 슬픔 없이 과거를 불러오기로 한다. “계피색으로 점철된 과거의 몇 점을 불러와 이야기로 부풀리는 동안 달콤하고 쌉싸름한 시간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기에. 과거의 내가 꾸었던 꿈일지도, 지금의 내가 다시 꾸게 될 꿈이거나 미래의 내가 덧칠해 버릴 꿈일지도 모르는 시간들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며 마주했던 10대 시절의 ‘어둠들’을 떠올린다. 어둡지만 결코 어둡지만은 않았던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시를 쓰는 마음’을 주고받았던 선생님을, ‘밤을 가로지르는 용기’를 냈던 여자 친구를, ‘함께 쓰고 함께 성장해 나간 시간’을 가꾸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 그래서일까, 그의 밤은 계피색을 닮았고 한없이 짙게 펼쳐졌는지도. 

 

만약 시간을 거꾸로 돌려 10대의 장한라가 여섯 번째 에세이 「스포일러」를 읽는다면 처음에 얼마나 놀랄지 상상해 보게 된다. 10대 시절에 꿈꾸고 바라던 모습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30대의 장한라 작가가 그야말로 ‘반전’ 가득한 미래의 스포일러를 어린 시절 그에게 전해 주었으니 말이다. 10대의 그가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생은 흘러가지 않았지만, 전혀 불행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오히려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일상 이야기에 한가득 미소가 지어진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기대와 달랐던 프랑스 유학 생활, 학위 계획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현실을 뒤로하고, 당장의 성공보다 더 큰 성취와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가는 재미를 그가 알았기 때문 아닐까. 이러한 스포일러라면, 누구라도 몇 번이고 반갑게 듣고 싶어질 것이다. 

일곱 번째 에세이 「망가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의 장도수 작가는 스스로를 ‘불온한 파수꾼’이라 말한다. “나만의 고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지키는 파수꾼이지만, “지키려는 동시에 모조리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일에 그래 왔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너무 소중해서 마음이 조마조마할 바에는 차라리 완전히 다 망가지고 부서져 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은 심정. 10대 시절의 그는 성적에 있어서도,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다. 세상 모든 것은 이해관계가 전제되기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결코 납득되지 않았고,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못해도 되고, 실수해도 되고, 못나도 된다고. 형편없는 모습 그대로일지라도 ‘뭐,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해 주는 이들. 이 소중한 존재들 덕에 비로소 ‘망가뜨리지 않고 그냥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장도수 작가의 애틋한 경험담이 사랑 가득 느껴진다. 

 

마지막 여덟 번째 에세이 「너의 밤이 머무르는 곳」의 황혜지 작가는 0.5평의 독서실 책상에서 대부분의 밤을 보낸 10대 때의 기억으로 현재 청소년들이 마음껏 관심사를 따라 탐색해 볼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공간에서 감각하는 다른 낯선 ‘첫 경험들’을 만들며 살고 싶은 그가 10대 때 머물렀던 밤의 시공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가는 촘촘히 흘러가는 그 시절 시간표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밤의 시간을 역추적해 간다. “학교 주소에 ‘산 00번지’가 쓰여 있지 않은 학교가 없는 부산”의 청소년이었던 그는 학교 옥상을 특히 사랑했다. “들쏘 떼가 쫓기듯이 치열하게 뛰지 않고” 우아하게 먹을 수 있었던 저녁 급식 이후 ‘빵또아’를 먹으며 한숨을 돌리던 시간, 0.5평 남짓한 끄트머리 책상에서 공부보다 ‘취향의 탐색’을 만끽했던 시간,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목 500미터 남짓의 길에 핫바, 쫀드기, 떡볶이, 감자 핫도그 등 온갖 야식거리가 즐비했던 간식 시간, 가족 모두가 잠든 한밤중 나만의 냉장고 습격 시간 등 밤의 머무르는 시공간이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유쾌하고 맛깔나게 펼쳐진다. 

 

 

[책 속으로] 

조용하게 비밀을 만들어 가는 시간 속에서 문자함의 용량은 전보다 빠르게 채워졌다. 친구들의 문자를 그때그때 지우고, 명우의 문자 중에서도 지워도 되는 문자를 고심해서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럼에도 지우기 어려운 문자 메시지가 늘어나는 만큼 그 애를 좋아하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쌓여 갔다. 그때 내가 사용했던 애니콜 은색 폴더폰에는 어떤 문자들이 저장되어 있었을까.  

_15-16쪽, 김달님 「아임 폴 인 러브 어게인」에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이 배구공 윌슨에게 마음을 다 쏟는 것처럼 나도 어느새 개에게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개를 보기 위해 집에 빨리 돌아왔다. 더 이상 카페와 친구 집과 거리를 헤매지 않았다. 동생도 개가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예전처럼 자주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다. 방과 후, 집으로 후다닥 달려온 동생과 나는 개를 무릎에 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_47쪽, 조우리 「10년 후의 약속」에서

 

처음 그곳을 찾은 사람은 열이면 열 웬 학교에서 이런 소리가 나냐며 의문을 가졌다. 어디 공장에서나 날 법한, 그것도 철강을 다루는 예사의 공장이 아닌 곳에서나 날 법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은 소리라고, 결코 가까이해서도 안 되는 위험한 소리라고 생각했을 테다. 하지만 그 소리와 3년을 꼬박 함께했던 학생들에게 이는 당연하면서도 필연적인 소리였다. 그건 어느 공장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아니라 예술 비슷한 무언가가 오롯이 한 사람의 고민과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_58쪽, 전성배 「그 밤의 소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비슷한 건물이 수없이 많았다. 그 안에는 나 같은 수험생들이 있을 거였다. 이름은 다르더라도 어떤 시험인가를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졌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하늘만은 탁 트여 있었다.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한낮의 하늘바라기를 하는 건 하루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 순간에는 구름의 모양이 천천히 변하는 걸 보거나 매일의 온도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_84쪽, 최지혜 「불꽃놀이」에서

 

내 계피색 꿈은, 아직도 여전히 누군가가 꾸고 있을 꿈이다. 지금의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하고, 내일의 내가 덥석 덧칠할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어두컴컴하다 못해 사위가 분별되지 않던, 그 변방의 학교에서 느꼈던 어둠을 아직도 생각한다. 그 어둠을 계속 부딪쳐 켜고 싶었던 빛 하나가 있었다면, 색깔 하나가 있었다면 그것은 계피색이었을 것이라고.

_104-105쪽, 서윤후 「계피색 꿈」에서

 

교복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 잠그고, 그 위에 스커트를 걸쳐 지퍼와 단추로 고정하고, 그다음에는 역시나 빳빳하고 별 신축성 없는 조끼를 걸치고는, 마무리로 넥타이나 펜던트까지 매어야 학교에 가는 몸이 되었지. 그 꺼풀을 내려놓으면 고스란히 ‘나’로 돌아온 것 같아 하루치 야자를 치러 내고 잠들기 전까지의 그 잠깐이 아주 소중했어. 

‘공부 잘하는 애’라든가 ‘모범생’ 같은 거 말고 그냥 너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고 무엇이든 되어도 되는 너. 잔잔한 눈송이가 내리듯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위안을 쌓아 주던 야자 끝난 밤도 있고. 또 환한 달처럼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자리 잡은 밤도 있었지.

_136-137쪽, 장한라 「스포일러」에서

 

비단 고요함을 지키고 있는 지금만의 일이 아니다. 친구들 대할 때도, 부모님을 대할 때도, 심지어는 시험을 대할 때에도 비슷하게 분열적인 욕구를 느낀다. 좋아하는 친구들에겐 짐짓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것에는 초연한 사람이라는 듯, 나에게 너희들은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대한다. 사실 그 친구들과 누구보다도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다정한 애정을 받는 동생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엄마의 사랑 같은 건 딱히 필요 없다는 듯 차갑게 굴게 된다. 

_157쪽, 장도수 「망가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서

 

옥상엔 계절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 종일 매시 매분 단위로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다가도 옥상에서만큼은 시계와 달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계단을 다 올랐을 때 어느새 빨리 어두워져 있다면 틀림없이 찬 바람이 불었고, 대낮같이 밝을 땐 아이스크림이 금세 녹아 버렸다. 모의고사를 더 자주 풀고 매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기 시작한 고3 때는 하루 중에도 옥상을 더 자주 그리워했다.  

_192쪽, 황혜지 「너의 밤이 머무르는 곳」에서

 


[차례] 

김달님│아임 폴 인 러브 어게인 

 • 밤의 이야기: 비밀을 나누는 밤

 

조우리│10년 후의 약속 

 • 밤의 이야기: 바다의 밤

 

전성배│그 밤의 소리

• 밤의 이야기: 편지를 건네는 밤 

 

최지혜│불꽃놀이

• 밤의 이야기: 수학여행의 밤 

 

서윤후│계피색 꿈  

• 밤의 이야기: 많고 많은 밤의 목록

 

장한라│스포일러 

• 밤의 이야기: 나를 배신하는 밤

 

장도수│망가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  

• 밤의 이야기: 온순한 일탈의 밤

 

황혜지│너의 밤이 머무르는 곳 

밤의 이야기: 라디오를 듣는 밤

 

그림 작가의 말 

임나운│새까만 밤하늘 짙은 푸른색 

 

 

[저자 소개]

지은이 

김달님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밤이 느리게 오는, 낮이 가장 긴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복을 입은 시절에는 밤을 더 좋아했다. 그 밤에 자주 생각했던 이름들은 대부분 다시 불러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작고 환한 빛으로 남아 있다. 어두운 방, 잠든 사람들 몰래 켜 두었던 하늘색 스탠드 불빛처럼.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

 

조우리

청소년소설을 쓴다.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엎드려 자고, 교가나 애국가 제창 때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목소리가 크고, 잘 웃고 잘 울고, 모르는 질문에도 대답을 씩씩하게 하는 아이들 역시 사랑한다. 1년 중 초여름 밤이 가장 좋다. 새 울음소리, 여름 꽃향기, 습하고 미지근한 바람 같은 것들로 인해.


전성배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가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농부와 농산물을 주로 이야기하고, 삶에 산재한 상념을 가끔 이야기한다. 생生의 목표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계속해서 농가를 위해 농부와 대화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알리는 것이다. 그 글은 주로 밤이 비유하는 죽음의 위에서 쓰일 것이다.

 

최지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시 수업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좋아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법』을 썼다. 심야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들으며 자랐다.

 

서윤후

시와 산문을 쓰며,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밤에만 밝아 오는 인간의 몇몇 현상에 관심이 많다. 용서를 구하게 되거나, 고백에 임박하거나, 나에게 솔직해지는 밤의 신비로움을 믿기 위해 자주 커피를 마신다.

 

장한라

주로 알파벳을 한글로 옮기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다. 이제껏 옮긴 책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생활을 꾸려 가는 걸 좋아하면서도, 사실은 숨 쉬듯이 계획을 세우고 지킨다. 밤이 되면 잠들기 싫어진다. 낮과 아침 사이에 무한히 공짜로 주어진 것만 같은 밤 시간이 몹시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장도수

SBS의 라디오PD. 어렸을 적 듣던 라디오의 낭만을 잊지 못하고 라디오PD가 되는 바람에, 아름답던 낭만의 자리를 지리멸렬한 생업으로 채우는 우를 범했다. 이에 생업과 무관한 뭔가를 하고 싶어서 퇴근 후 밤을 헐어 팟캐스트 〈빅 리틀 라이프〉를 제작했다. 낮보다 밤에 용감해지는 편이라 가능했다.

 

황혜지

청소년들이 마음껏 관심사를 따라 탐색해 볼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만든다. 이전엔 교육자들이 학교 밖에서 실험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를, 지금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청소년을 위한 라이브러리를 운영한다. 새로운 공간에서 감각하는 다른 낯선 첫 경험들을 만들며 살고 싶다. 과연 내가 10대 때 머물렀던 밤의 시공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린이 

임나운

그림으로 기억을 기록한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다. 『여름은 자란다』 『고냥 일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산산죽죽』 등을 펴냈고 『동희의 오늘』 『용기가 필요한 여름』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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