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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책씨앗
작성일
2022-12-16 09:43:27

반듯하기만 한 온음의 세계에 울려 퍼지는 반음의 이야기

반음

[책 소개]

“이제는 나의 목소리로 노래할 거야.”

반듯하기만 한 온음의 세계에 울려 퍼지는 반음의 이야기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채기성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반음』이 창비청소년문학 115권으로 출간되었다. 열여덟 살 주인공 ‘제주’가 합창부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겪은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 입체적인 인물과 매력적인 비유가 돋보인다. 전작 『언맨드』에서 인간이 되려는 로봇의 내면을 들여다봤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제주의 감정을 찬찬히 살핀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면을 파고드는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며, 어른들의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연대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청소년과 청소년 노동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현실적인 탐구가 깊은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주위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오롯이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힘찬 응원을 건넬 소중한 작품이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떠도는

열여덟의 마음

 

낯선 번호의 전화가 울렸다.

“혹시 권제주 맞나요?” (본문 11면)

 

열여덟 살 주인공 제주에게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다. 합창부에 들어와서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단장 ‘재현’의 전화. 제주는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고 노래를 좋아하지만, 합창부에 가입하기를 망설인다. 악보를 읽지 못해 정확한 음을 내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합창부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격투기에 빠져 딸을 방치하는, 무책임하고 철없는 아빠다.

 

“제주야, 돈 좀 있니?”

“……무슨 돈?”

“곧 있잖아, 대전료 받으면 내가 바로 줄 테니까…….”

“고등학생한테 돈 달라는 아빠가 어딨어.” (본문 21면)

 

생계비를 보내 주기는커녕 돈을 빌려 달라는 아빠 때문에 제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한다. 제주는 노래, 연기, 춤 등의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해 ‘찰스’를 만나게 된다. 노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찾아갔지만, 찰스는 일을 잡아 주지 않고 오히려 제주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제주 주변엔 뻔뻔하고 염치없는 어른들밖에 없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주는 친구들과 노래하며 소속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합창부에 들어간다. 하지만 제주는 악보를 보지 못해 음을 자주 틀리고, 음악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며 폭언까지 듣는다. 자신이 합창부의 불협화음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제주. 그런 제주에게 찰스가 뜻밖의 제안을 건넨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자는 제안.

 

정교하게 설계되어 움직이는 오디션의 세계

세트와 배경으로 이용되는 아이들

 

참가비를 준다는 말에 제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다. 제주는 은연중에 방송 출연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기대했던 첫 방송에서 제주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디션에서마저 제주는 가장자리로 밀려나 주변을 겉도는 신세가 된다.

 

모든 것이 순간의 경쟁이며 우연의 연속이라고 자막을 넣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경연의 세계에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움직였다. 사전에 ‘픽’을 받은 출연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꾸려졌다. (본문 94~95면)

 

소설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현장을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 낸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문학적인 묘사는 그간 아이돌 오디션 등 서로 경쟁하는 이야기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그렇게 주변부에 머물던 제주는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오디션의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조별 경연 미션에서 생긴 뜻밖의 사건 때문에 제주는 어려움을 겪고, 이후 수많은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비난하며 조롱하는 악플들에서 벗어나 제주는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담담하고 힘찬 위로와 응원

 

주인공 제주를 비롯한 『반음』 속 청소년들은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어른들의 폭력에 좌절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다. 서로 아픔을 공유하며 힘이 되어 주고, 세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온음과 반음 같은 이분법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연대는 읽는 이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목소리로 오롯이 노래하려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담담하면서도 힘찬 위로와 응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곤 한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있다.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좌절하는 이들에게 제주의 목소리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줄거리]

열여덟 살 주인공 ‘제주’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다. 합창부에 들어와서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단장 ‘재현’의 전화. 제주는 망설이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합창부에 가입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느라 알게 된 ‘찰스’의 제안으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뜻밖의 어려움을 마주하는데…….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는 자주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곤 한다.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있다.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지 못하고 움츠러들거나 좌절하는 이들에게 제주의 목소리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자 소개]

채기성

주변의 존재들과 얼굴을 맞대며 감각한 것을 글로 옮겨 적는 걸 좋아한다.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앙상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언맨드』로 제17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프롤로그 006

1부 메조피아노: 조금 여리게 009

2부 라멘타빌레: 슬픈 듯이 089

3부 리솔루토: 자신감 있게 165

에필로그 216

작가의 말 219

 


[본문 중에서]

첫 연주는 무반주 합창이었다.

이른 봄밤을 떠올리게 하는 가볍고 서늘한 기운이 기념관 강당을 채우고 있었다. 조명 너머 객석에 앉은 이들 모두 들뜬 마음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동하는 시작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대를 향한 밝은 조명 속에서 선생님의 지휘봉이 높게 솟았다. 정적의 세상에 최초의 소리를 내는 제사가 있었다면, 제사장의 모습은 저와 같았을 것이다. 숨죽인 고요 속에서 힘차고 크게 부를 것을 주문하는 제사장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그 고요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한 순간을 기다리며.

첫 음을 내야 할 시간이다. 본문 6면

 

 

제주야,

돈 좀 있니?

 

가끔 그런 꿈을 꿨다.

목소리의 주인은 아빠가 되었다가 찰스가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알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가 때로는 정빈이 되기도 했다.

아빠에게서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더 이상 찰스의 스튜디오에 나가지 않았다.

꿈에서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잃었어, 그거. 본문 34면

 

재현과 나는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길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낡고 허름한 음악실은 어느 구석에도 정을 붙일 곳이 없어 황량했다. 그 쓸쓸한 공간에서 우리가 공유한 건 어떤 슬픔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그 여름 우리가 잃을 것에 대한 예감 같은. 본문 73면

 

악보를 본다는 건 내게 모르는 언어가 적힌 종이를 보는 것과 같았다.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음이 있었고,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있었다. 악보는 마치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세계 같아 절망감이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평균치의 삶 근처에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과 비슷한 느낌의 절망감이었다. 본문 82면

 

그래도 내 안에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공과금과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래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기대. 내가 닿을 수 없는 기대와 꿈으로 잠시 현실을 외면하고 미뤄 두었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꿈이 깨진 뒤 남은 것은 꿈을 꾼 대가로 요구받는 영수증 같은 현실이었다. 본문 164면

 

마음속 깊이 묵혀 두었던 말을 꺼내니 답이 없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더 있었다. 학원이 끝나면 부모님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지루한 하루에 관하여 친구와 밤늦도록 통화를 하고 잠드는 일상을 한 번이라도 누리고 싶다는 얘기. 반찬 떨어진 거 알면서도 안 사 먹고 나중에 진짜 못 참겠다 싶을 때 마트에 간다는 얘기. 본문 168면

 

시합 전에 나는 아빠에게 이번 경기를 마치면 운동을 그만둘 거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그치는 말에 아빠는 화가 났는지 대답이 없었다. 아빠는 듣기 싫은 말을 하는 내가 가끔 징그럽다고 했는데, 그건 합창부에서도 들은 말이었다. 징그러운 반음. 내가 정말 그런 존재인지 아빠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불완전한 반음 같아?

나는 대답이 없는 휴대폰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징그러워?

그래도 답이 없었다. 본문 192면

 

그날 사람들은 기대했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원하는 모습을 보는 대신에,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날 우리가 부른 노래는 반듯하기만 한 온음의 세계에 울려 퍼진 반음의 목소리였다. 본문 215면

 

이따금 노래할 때 거울을 본다. 노래할 때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음악도 모르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움츠리게 했는지 모른다.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음악은 여전히 잘 모른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러나 계속 노래하고 싶다. 본문 217~2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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