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refugee).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멀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그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며, 심지어 나도 난민이라는 느낌이 든다.
소설 초반부를 읽을 때는 단편소설인가? 추리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한 조각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길을 떠도는 ‘해나’와 ‘민’,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캄보디아 톤레사프 호수에서 자란 ‘뚜앙’, 이슬람 율법을 어긴 죄로 친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인도 출신 ‘찬드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쫓겨 온 ‘샤샤’네 가족, 아프리카 부족장 딸 ‘웅가’와 프랑스 백인 남자 ‘미셸’ 커플 등이 영종도 난민 지원 센터에 모여들며 관계를 맺어 간다. 연못에 떠 있는 개구리밥보다 못한 이들이 서로를 응원하며 아파하는 후반부에 이를 무렵, 멀게만 느끼던 ‘난민’이, 실체가 있는 인물로 살아나 독자에게 걸어 나온다.
소설이 몇 페이지 남지 않았을 무렵 “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라는 털보 선생의 대사는 강펀치처럼 내 머리를 강타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세계가 나에게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을 때, 또는 그 속에 뿌리내렸다고 생각했건만 어느새 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난민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고 ‘나’임을 깨닫게 된다.
표명희 장편소설 『어느 날 난민』이 창비청소년문학 83번으로 출간되었다. 인천 공항 근처 난민 캠프를 배경으로 버려진 한국 아이 ‘민’과 여러 난민들의 사연을 촘촘히 펼쳐 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소설이다. 전작 『오프로드 다이어리』 『하우스 메이트』 등을 통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을 그려 온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에서 ‘먼 데서 온 낯선 이웃’인 난민에게로 관심의 테두리를 확장한다. 실제 난민들을 만나고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예리한 리얼리즘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해 한국의 난민 문제를 깊숙이 파고든다. 특히 난민 캠프에 모인 이들이 서로 조금씩 비밀을 드러내고 이해하게 되는 구성을 택해 세계의 어둡고 아픈 현실을 비추면서도 새싹 같은 희망의 기운을 전한다. 난민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토대로 이 시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인권과 존중의 가치를 가슴 시리게 그려 내 청소년과 성인 모두가 인상 깊게 읽을 수 있는 수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