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시인이 각자 친애하는 화가를 한 명씩 고르고, 그들의 그림을 각자의 언어로 탐구, 향유했다.
안희연 시인은 특정한 사조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그림 세계를 구축한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를, 서윤후 시인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성정을 우키요에라는 불멸의 장르로 승화시킨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오은 시인은 강렬한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해 ‘야수주의’라는 사조의 시초가 된 프랑스의 거장 ‘앙리 마티스’를, 김연덕 시인은 간결하고 깔끔한 선과 색채로 천진하여 더욱 애달픈 연인 연작을 그려낸 프랑스 화가 ‘헤몽 페네’를 골랐다.
신미나 시인은 순박하고 꾸밈없는 농촌 생활을 화폭에 담은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이현호 시인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활약하며 기인, 미치광이, 주객 등의 별칭으로 전국팔도에 이름을 떨친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최북’을, 최재원 시인은 풍성한 색채와 영롱한 빛 표현으로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한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를, 박세미 시인은 오랜 시간 서로의 예술에 크고 작은 영감을 선사하며 우정을 나눈 한국의 동시대 화가 ‘이소화’를 골랐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인 시인과 화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두 개의 예술이 서로를 흡수하여 하나가 되는 합일의 예술을 목격한다. 어쩌면 글로 그림을, 그림으로 글을 100퍼센트 완벽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결핍이 그들을 계속해서 책상과 이젤 앞에 앉히고, 끊임없이 쓰게 하고 그리게 하는 것 아닐까?
시인과 화가가 접촉한 순간은 한 편의 산문이 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이 글은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생경한 촉감을 남길 테다.
- 신미나(싱고)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이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시툰집 『詩누이』, 『안녕, 해태』(전 3권), 『서릿길을 셔벗셔벗』 등을 쓰고 그렸다. 게으른 문방구 주인을 꿈꾸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 몰래 수능을 보던 추운 겨울날, 소녀 시대를 졸업했다.
- 오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 등을 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을 그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것이 마치 “그리움을 그리워한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림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 이현호
2007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비물질』, 산문집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 등을 펴냈다.
-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을 펴냈다. 그림을 질료 삼아 언어가 움직일 때가 있다. 고맙고 기쁜 일이다.
- 안희연
시인. 2012년 창비 신인 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등을 썼다. 슬픔의 여러 결을 읽어 내는, 사랑하자고 말하는 시를 쓴다.
- 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小小小』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산문집 『햇빛세입자』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등을 펴냈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18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 산문집 『액체 상태의 사랑』이 있다. 모든 그림엔 각기 다른 형태의 거칠고 확실한 사랑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 최재원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로 제40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말로 다 못 하는, 말이 안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못 잇게 하는, 말문을 막는 것들이 말을 거치지 않고, 말을 뚫고, 말없이 전달될 때, 두 세계가 거짓말처럼 몸을 겹쳐 자신과 서로를 껴안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림을 통해 텅 빈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테두리가 중앙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성실함과 게으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한계 속에서만이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일단 미술관에 간다. 미술관에 가려고 새로운 도시에 간다. 전후로는 무조건 든든히 먹는다. 하나의 그림은 말 없는 하나의 도시, 한 사람의 무음의 세상, 여러 세계를 넘나들다 보면 배가 고프기 마련.)